[아이뉴스24 성지은 기자] 사이버전 중심으로 전쟁 양상 변화가 예고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응하는 국방개혁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인재 육성·기술 투자 등으로 강력한 국방력을 구축하고 군사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단 주장이다.
산·학·연·군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는 24일 전쟁기념관에서 국방정보통신협회 주최로 열린 '국방개혁2.0을 위한 국방 사이버 역량강화 세미나'에서 사이버 작전 수행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최근의 전쟁은 심리전‧사이버전 등 사회 분란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비대칭‧비정규 전력 중심의 4세대 전쟁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
이는 소총을 든 징집병이 전쟁을 수행하는 1세대 전쟁(나폴레옹 전쟁), 대규모 소모전을 특징으로 하는 2세대 전쟁(1차 세계대전), 기동력과 기습에 초점을 맞춘 3세대 전쟁(2차 세계대전)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날 조인희 국방정보통신협회 부회장은 "입영자원이 감소하는 가운데 4세대 전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과학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며 "정보·과학기술을 집약한 질적인 국방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美·中·日·北, 사이버전 중요성 인지·투자 확대
이미 주변국인 미국·중국·일본·북한은 사이버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매년 70억달러(7조9천400억원)를 투자하며 약 9천명이 사이버전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에는 사이버사령부를 통합전투사령부(UCC)로 격상, 사이버 전쟁 능력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인민해방군 전략지원부대 내 핵심 전략지원부대인 사이버부를 두고 사이버전을 수행한다. 일본 방위성도 자위대 지휘통신시스템부대 예하에 사이버방위대를 창설하면서 대응 강도를 높였다.
더욱이 북한은 미·중에 버금가는 사이버 전쟁 능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인력 또한 막대하다. 국방부 백서(2016년)에 따르면, 북한은 약 6천800명의 사이버전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숨겨진 사이버군이 포함될 경우 인력을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달리 국내는 사이버전에 대비가 미흡하다는 평가다. 사이버 전문가 양성은 민간에 의존하고 사이버전 관련 교육은 미미한 상태. 국방, 특히 사이버 분야에 대한 투자는 턱없이 적다는 지적이다.
신규용 육군사관학교 사이버전연구센터 교수는 "우리나라는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과학기술전문사관 같은 민간 기관을 통해 사이버 전문가를 양성하며 군은 민간에 인력을 의존한다"며 "군 교육기관 내 사이버전 관련 교육 비중도 미미하다"고 꼬집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정보통신학교 초군반의 사이버전 관련 교육 시수는 전체의 3.95%(608시간 중 24시간), 고군반은 3.2%(1천시간 중 32시간)에 불과하다. 정규과정을 기준으로 봤을 때, 합동군사대학교 내 사이버전 관련 교육은 단 2시간이다. 전체 교육 시간 1천264시간 중 0.16%에 불과하다.
신 교수는 "2019년 전체 국방비를 미국과 비교했을 때 약 17배 차이가 났고 2014년 기준으로 사이버사령부에 투입하는 금액도 5천억 가까이 차이났다"며 "기본적으로 자본을 투자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데, 투자가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개혁2.0, 사이버 경쟁력 제고·예산 증액 필수
국방부는 올해를 국방개혁2.0의 원념으로 삼고, 강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강한 군대 건설하겠다고 비전을 밝힌 바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국방개혁을 이루기 위해 군 자체의 사이버 경쟁력을 제고하고 산업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단 의견이 제시됐다.
이영 테르텐 대표는 "이스라엘은 군주도 하에 사이버전에 대비하고 군 출신의 인재들이 창업을 통해 방산·보안기술을 개발한 뒤 나스닥에 상장까지 한다"며 "반대로 우리나라 군은 산업계에 의존도가 높고 제한된 예산으로 산업계의 기술·학계의 지식을 습득하려고 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이버전은 다가올 미래가 아닌 현실인 만큼 역량을 제고하기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산 증액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인력 관리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임종인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교수는 "사이버는 이제 작전 분야고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무기 체계·작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며 "정보통신 분야에서 사이버 예산이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적은데, 예산 확보와 인력·조직 확대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또 "싸이코(CyKor)란 국내 화이트해커 조직은 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개별 능력이 뛰어나지만, 이 같은 인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며 인력 관리 체계 개선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경계선 방어뿐만 아니라 방어체계가 뚫릴 것을 대비,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 IT자원을 세밀하게 관리하고 보안을 유지관리하는 작업이 필수라는 것.
박무성 국방과학연구소 부장은 "사이버전은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하는 지피지기(知彼知己)인데, 일부는 적의 행태만 살피는 측면이 있다"며 "군 내부에 어떤 소프트웨어와 자산을 가졌는지, 보안 패치가 진행됐는지 등을 세밀하게 파악해야 신·변종 위협에 대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민호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센터장은 "시스템을 점검하면 보안 취약점 등이 발견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데, 예산을 투입하고 보안을 강화하기보다 처벌하기에 급급하다"며 잘못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외 현장에서는 군 내 사이버 분야 위상을 강화하고 신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노력이 이어가야 한단 목소리가 나왔다.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은 "장관 재직 당시 2010년 사이버사령부를 창설했지만, 아직 사이버전에 대한 정확한 방향 설정이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하며 "이번 세미나를 기회로 삼아 관련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성지은기자 buildcastle@inews24.com